장애인들 보면서, 자칫 우리의 ‘영적 장애’ 놓치고 있는 건...

Author
milal
Date
2018-04-25 21:38
Views
70
[유한승의 러브레터] ‘장애인의 단상
 

 
  1. 저는 1급 장애를 가진 목사입니다. 정릉에 생명샘교회라는 교회에서 담임으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장애를 가진 목사가 개척이 아닌 이상 청빙되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건강한 목회자를 모셔야 교회가 건강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백 번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가 140여명의 훌륭한 목회자들을 제치고 저같이 신체적 결함이, 그것도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담임으로 청빙했다니 참 놀라운 성도들입니다.

 
  1. 작년 이맘 때쯤. 부활주일 예배를 마치고 애틀란타에 도착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애틀란타 밀알'의 초대로 말씀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덕분에 비행기를 처음 탔습니다. 평생 제가 간직해온 말씀인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오늘은 바로 정확히 1년이 되면서 다시 그 내용을 상기해 보며, 이 편지를 받는 분들은 물론 작년 이맘 때 제 설교를 들으셨던 분들이 저와 함께 스스로를 점검해보셨으면 합니다.


 
  1. 저는 1980년 10월 23일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커다란 연탄 트럭이 면목동에서 길을 건너던 저를 쳤습니다. 5살 꼬마가 연탄 트럭에 치었으니,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외삼촌이 계시던 경희의료원으로 옮겨져 수술하던 중 너무 많은 피흘림을 감당 못하고, 결국 하얀 가운에 덮인 채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순간 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의료진이 다시 움직이는 저를 발견하고 수술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났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꿈 속에서의 음성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다'.

대개 하나님을 만나는 시점을 조사하면 청소년이나 청년 시기이고, 장소는 수련회나 뜨거운 찬양 집회 때 혹은 기도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아무것도 못하는 죽음의 상태에서 만났습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하얀 천 속에 덮인 제게, 그분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셨습니다.

 
  1. 사고 이전의 저는 개구쟁이였습니다. 교회는 누나들 따라 놀러다녔지 예배를 드린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기억하는 분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술 이후 회복실에서 깨어나 건넨 첫 마디가 "하나님 감사합니다"였고, 어머니를 보고서는 "엄마 기도해줘"라고 했답니다. 그 모습을 본 회복실이 눈물바다가 됐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연이겠지'라고 하거나,  '지어낸 거 아니야'라고 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조차  '에이, 그럴수 있지' 하고 넘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증거를 남겨주셨습니다.

 
  1. 삶입니다.


종전에는 교회가 뭔지. 장난치는 것밖에 몰랐던 5살짜리 아이가, 뜨거운 성령의 임재 하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첫째.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버지부터 시작했습니다. 술을 좋아하고, 교회는 가지 않았던 아버지를 붙들고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매일 예배 때마다 울었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네, 예수 믿으셨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 같습니다.

병원 전체를 누비며 다니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꼬마가 입원해서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에게 미니카 선물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받은 선물을 그대로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스님을 붙들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지를 않나,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을 서슴 없이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부모님은 저보고 제 아들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셨습니다. 결국 그 스님을 전도했습니다. 각서까지 받아냈습니다.

지금 제가 이런 전도 방법으로 전도한다면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할 것 입니다. 하지만 5살 아이의 전도는 순수했습니다. 순수한만큼  무서웠습니다. 양보가 없었습니다.

 
  1. 둘째. 퍼주기 시작했습니다.

나한테 있는 장난감, 과자를 퍼주는 것이야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도하면서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부족한 점들이 보입니다. 옆 병동마다 다 돌아다니며 어머니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 사람 장갑 사줘."

"엄마 이 사람은 내의 사줘."

그런데 어머니가 사 주지 않으면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너무 힘드셨는지 어머니께서 한두번 짜증을 내셨습니다. 호되게 야단치시며 '이러다 빚쟁이 되겠다'고.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천국 가면 상이 많아요".

지금 이런 말 했다가는 누님들에게 불호령 떨어지겠지만, 어린아이 입에서 나오니 아무도 뭐라 말하지 못했습니다.

 
  1. 7. 제게 별명이 생겼습니다. '꼬마 목사'였습니다.


입버릇처럼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 목사되기로 약속했다고 말하였습니다. 부모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겝니다. 병동마다 다니며 중증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네, 세 번째 증거로 참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기도하면 병이 낫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놀림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니 꼴은 그러면서, 누구를 위해 기도하냐'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그런 제가 부끄러워 도망가기도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뇌를 다쳐서 말도 잘 못하고 걷지 못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같은 병실의 친구들이 업신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오셔서 말씀했습니다. 지난 밤에 어떤 남자가 기름을 온통 내 아들에게 쏟아 부었다고, 예수 믿겠다고 말입니다. 놀랍게도 말하고 걷게 됐습니다. 그 가정의 어머님은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지금도 그 가정과는 교류 중에 있습니다.

언젠가 그 친구 가정의 어머님이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머리털을 다 뽑아 신을 만들어도 못 갚을 은혜'.

 
  1. 위의 여러 일들이 5살짜리 꼬마에게 약 3년간 벌어진 일들입니다. 꼬마 목사에게 지금의 중년 목사가 지지는 않는지, 언제나 비교하며 도전받습니다.


그런데 위의 내용들보다 더 중요한 점검 사항이 있습니다. '기쁨'입니다. '감사'입니다. '웃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 그것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9절 말씀에 기록된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1. 9. 지금도 재활병원을 다녀보면 훈련받는 모두 울상입니다. 한 시간 하면 힘들다고 고개를 흔듭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했던 5살 어린 시절. 그로부터 3년의 병원생활. 저는 새벽부터 일어나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찬양은 없으면서 알고 있는 찬양을 계속 반복하며 그 날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루에 6-7시간씩 보조기를 착용하고 걷는 훈련을 했습니다. 흉수 2번 이하 완전 마비된 사람이 보조기를 착용하고 걷는 훈련을 하는 것은 지금도 한국이나 미국에서 기상천외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아이가 5살 때,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며, 걸을 수 있다고 훈련을 6-7시간씩 하면서 굵은 땀방울이 떨어지면서도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찬양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도하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주변에서 업신여겨도 항상 웃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병문안을 오셨다가, 교회 성도 분들이 은혜받고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흥회를 가려거든 경희의료원으로 가라'고.

여러분. 그것이 성령님의 힘입니다.
▲휠체어를 탄 모습. 유 목사는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들고 저는 저를 점검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린것처럼 작년 애틀랜타 밀알의 초대로 장애인의 날 기념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 중에는 당시 성도분들도 몇몇 계십니다. 그 분들에게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계신지 물어봅니다. 만약 그렇지 않아면 '성령 충만한 삶'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점검해 보세요.

 

장애의 정의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장애는 신체적 장애도 있을 수 있지만 정신적 장애도 있고 영적 장애도 있습니다. 개인적 장애가 있을수 있지만 당연히 가정에도, 교회에도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로막혀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적 장애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된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집단 이기를 구현하고 자기 실속을 채운다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한 교회라 해도 장애 있는 교회입니다.

 

러브레터를 받으시는 여러분, 장애인의 날입니다.

한국교회들도 4월 마지막 주일을 장애인의 주일로 정하거나 세 번째 주일로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예배드리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육체적 장애인들을 보며, 여러분의 영적 장애, 교회의 장애, 가정의 장애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되찾기 위해 성령 충만한 삶을 회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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